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이면 강원도 쪽으로 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일부러 국도로 내려서 횡성군 안흥면소재지를 들를 때가 간혹 있습니다. 면소재지래야 이쪽에서 저쪽 길 끝이 빤히 보이는 자그마한 소도시인 안흥. 그곳을 들르는 이유는 다름아닌 ‘찐빵’ 때문입니다. 안흥찐빵의 높은 명성쯤이야 굳이 따로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아실 겁니다. 찐빵이 다르면 뭐 얼마나 다르겠습니까마는 그래도 ‘안흥’이란 이정표와 마주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들러서 따끈한 찐빵 몇개를 사들곤 하는 것도 이런 명성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이즈음 안흥의 스물여덟 곳 찐빵 집들의 분위기가 흉흉합니다. 저마다 간판에다 ‘원조’를 써붙이며 벌여온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안흥의 찐빵 집들은 그동안 얼굴 한번 붉히는 일없이 마음을 나누면서 지내왔답니다. 그런데 이즈음 몇몇 찐빵집 업주들 사이에 언성이 높아지고 멱살잡이가 시작됐다고 합니다.
그게 다 안흥의 찐빵 집에 ‘찐빵 만드는 기계’가 들어오면서부터 벌어진 현상이었습니다. 평소 자주 드나들던 단골 찐빵집 주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이랬습니다. 지난 4월 안흥의 찐빵집들이 농업회사법인을 만들어 특허청으로부터 ‘안흥찐빵’이란 브랜드를 배타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지리적 표시제’ 인증을 받았답니다. 안흥과는 전혀 관련없는 몇몇 식품회사가 제멋대로 ‘안흥찐빵’이란 브랜드를 사용하는 관행에 제동을 걸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안흥의 찐빵집 업주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했음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안흥에서 찐빵을 만들지만, ‘안흥찐빵’이란 브랜드를 쓰지 못하게 된 곳이 있었으니, 그곳이 바로 기계로 찐빵을 만드는 세 곳의 찐빵집이었습니다. 이른바 ‘기계찐빵’ 업주들이 최근 ‘손찐빵’ 업주들로부터 제명을 당한 탓입니다. 제명의 이유는 ‘손으로 만드는 전통방식이 아니라 기계로 찐빵을 만든다’는 것이었습니다. 손찐빵 업주들이 “기계로 만드는 찐빵으로는 전통의 맛을 지키기 어렵고 다른 지역의 찐빵과 차별화할 수도 없다”며 “이들 업소가 지나친 잇속챙기기로 안흥찐빵이란 브랜드 명성에 흠집을 냈다”고 제명 이유를 밝혔다고 합니다.
‘기계찐빵’ 업소들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옛날 방식대로 만들자면 지금도 효모 대신 막걸리로 발효하고, 가스불이 아닌 장작불로 가마솥에 쪄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세상이 바뀌면 음식을 만드는 방법도 바뀌는 법”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이들은 또 “자동화된 설비를 이용하면 더 위생적이고 규격화한 찐빵을 만들 수 있다”고 목청을 높였습니다. 이렇게 손찐빵과 기계찐빵의 갈등이 빚어지면서 오는 10월1일부터 사흘 동안 치러질 예정이던 ‘안흥찐빵 축제’도 취소되고 말았습니다.
과연 어느 쪽 이야기가 이치에 맞을까요. 늦은 밤, 따끈한 찐빵 맛을 보러 고속도로에서 내려 별 생각없이 들렀던 안흥의 찐빵 집에서 찐빵 한 봉지를 받아들고 돌아오는 내내 머리가 복잡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사실은, 고객들은 ‘손’이냐 ‘기계’냐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안흥찐빵을 안흥찐빵답게 하는 것’은 읍내에 옹기종기 모인 찐빵집들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정겨운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요. 독자 여러분이라면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주시겠습니까.
자료출처 : 문화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