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기행/안흥찐빵 황교익<맛 칼럼니스트> 안흥은 강원 횡성군에 속하는 조그만 면 단위 지역이다. ‘후치악(치 악산의 동쪽)’으로 들어서는 길목 역할을 하는 곳이라 등산객이 자주 지나치긴 하지만 그외는 별다른 특색이 없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시골 이다. 이 조그만 산골에서 안흥찐빵이라는 ‘히트 상품’이 나왔다. 안흥면에는 현재 20여 곳의 찐빵집이 있다. 안흥찐빵, 옛날안흥찐빵, 우리밀안흥찐빵, 안흥고향찐빵, 안흥토속찐빵, 안흥전통찐빵, 안흥시골 찐빵, 안흥뿌리찐빵, 심순녀안흥찐빵, 안흥쑥찐빵, 안흥민속영양찐빵 등 등. 그리고 최근엔 고속도로 휴게소마다 안흥찐빵을 판다는 간판을 붙 이고 있다. 안흥찐빵에 뭔가 특별난 맛이라도 있는 것일까? 안흥찐빵에는 물론(?) 원조가 있다. 심순녀 할머니가 그다. 할머니는 안흥면에서 태어나 열아홉에 결혼을 했다. 친정이 못살아 입 하나 줄 이기 위해 일찍 시집을 보낸 것이다. 그러나 가난하기는 시집도 마찬 가지였다. 아이가 셋 생길 동안 남편은 돈도 벌어오지 못했다. 심씨는 행상을 나섰다. 스물셋이었다. 참외, 사과, 고등어 따위가 든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다니며 팔았다. 어느날 원주역전의 호떡가게 앞을 지나치 는데, 장사가 잘되는 것 같았다. 그날 밤 역전 뒤 허름한 여인숙에서 잠을 자며 곰곰 생각을 했다. 그래 호떡 장사를 해보자. 다음날 밀가루 한 포대, 설탕, 화덕 하나를 사서 안흥면사무소 앞에 좌 판을 벌였다. 첫 장사 결과는 본전도 안 남았다. 호떡 하나의 양 조절 에 실패를 한 것이다. 차츰차츰 궁리가 생겼다. 밀가루 다섯 포대째가 되어서야 조금의 이윤을 볼 수 있었다. “한겨울에 맨땅에 앉아 장사를 했어. 양말도 없이…. 지금 엉덩이가 시커매. 그때 동상이 걸린 게… 가렵고….” 면사무소 옆에 학교가 하나 있어 꼬마 손님이 많았다. 핫도그, 튀김, 도너츠, 찐빵도 했다. 돈이 모이자 가게를 세 내고, 메뉴를 차츰 줄여 나갔다. 찐빵만 한 것은 8년 전부터의 일이다. 찐빵이 맛있다는 소문이 나자 단골들이 생겼다. 원주에서도 찐빵을 사 러 올 정도였다. 5년 전 어느 신문에 심씨의 찐빵이 맛있다는 조그만 기사가 나갔다. 이어 잡지사에서도, 텔레비전에서도 와 취재를 했다. 유명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곧 안흥찐빵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한 집이 장사가 잘되면 주변에 이를 흉내낸 집이 생기게 마련이다. 안 흥면에만 현재 영업 중인 찐빵집이 20여 곳이나 된다. 상호에 원조, 옛 날, 할머니, 전통 등을 달아 오랜 역사를 지닌 듯이 보이려고 하고 있 지만 실제로는 길어야 1∼2년밖에 되지 않은 가게들이다. 그러나 아쉽 게도(?) 이들 가게에 들어서는 손님은 눈에 띄지 않는다. 과연 심순녀 할머니의 찐빵이 그렇게 맛있는 것일까. 빵이 차지고 팥 소가 달지 않다는 점 외에는 별다른 특징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어떤 이는 팥 껍질이 씹히지 않는 게 특이하다고 했다. 독특한 제조 비법이 라도 있는 것이냐고 꼬치꼬치 캐물어도 할머니는 웃기만 했다. 할머니의 거친 손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찐빵은 가난한 시절의 음 식이다. 그 가난의 시대를 온몸으로 이겨내며 살아온 할머니의 인생이 담긴 찐빵이라 맛이 더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고 보니 가게에 줄을 선 손님들은 40∼50대가 대부분이었다. 할머 니의 찐빵 맛의 비결은 가난의 시대를 함께한 이들의 공감대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